Culture

기억의 조각을 따라가는 시간,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리뷰]

허정은 기자
2026-10-29 22: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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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을 따라가는 시간,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리뷰] (제공: (주)연극열전)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소중했던 순간은 더욱 선명해진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조기 치매를 앓는 톰이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55번째 생일을 맞은 톰은 딸 소피가 골라준 재킷 대신 오래된 교복 재킷을 집어 든다. 이를 계기로 톰은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이자벨라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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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을 따라가는 시간,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리뷰] (제공: (주)연극열전)

영국 오리지널 프로덕션 시어터 리(Theatre Re)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피지컬 시어터 장르의 작품으로 배우들의 신체 움직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29일 오후 8시 공연에서는 톰 역의 백성현, 소피·이자벨라 역의 김주연, 마이크 역의 곽다인, 엠마 역의 강은나가 무대에 올랐다.

극의 시작부터 눈길을 끄는 것은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기억의 흐름이다.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대사 대신 표정과 몸짓,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반복되는 동작과 배우들의 움직임은 기억이 선명하게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뒤섞이는 과정을 표현한다. 익숙하게 이어지던 장면이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지며 톰이 겪는 변화를 관객도 함께 마주하게 된다.

무대 위 소품 활용도 인상적이다. 옷이 빼곡하게 걸린 행거는 톰의 기억을 꺼내는 매개가 되고, 책상과 의자는 교실과 결혼식장 등 다양한 공간의 소품으로 변한다. 배우들이 직접 소품을 옮기고 의상을 갈아입는 과정까지 극의 일부가 되면서 무대는 끊임없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특히 오래된 교복 재킷 하나가 과거의 기억을 불러온다는 설정은 익숙한 물건에 담긴 기억의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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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을 따라가는 시간,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리뷰] (제공: (주)연극열전)

배우들의 움직임과 맞물리는 라이브 음악 역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음악은 단순한 배경에 머무르지 않고 장면의 분위기와 인물의 감정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잔잔하게 흐르던 소리는 장면에 따라 강렬하게 변하고, 배우들의 움직임과 맞물리며 톰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표현한다. 배우들의 몸짓과 음악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대사 없이도 인물의 감정을 전달한다.

톰의 기억 속에는 친구들과 함께했던 청춘의 순간부터 이자벨라와 사랑을 나누던 시간까지 다양한 추억이 담겨 있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이어질수록 톰이 살아온 인생의 한 페이지가 펼쳐지지만, 기억은 이내 뒤섞이고 흐름은 끊어진다. 과거의 행복과 현재의 혼란이 교차하면서 기억을 잃어가는 톰의 아픔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치매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이야기가 전하는 감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억과 그리움에 닿아 있다.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는 순간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 그리고 잊고 싶지 않은 사람들까지. 톰이 기억을 붙잡으려 애쓰는 모습은 관객 각자의 소중한 순간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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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을 따라가는 시간,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리뷰] (제공: (주)연극열전)

대사 없이 움직임과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만큼 장면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보다 배우들의 표현을 따라가며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작품을 즐기는 방법이다. 익숙한 소품과 섬세한 움직임, 라이브 음악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쌓이며 한 사람의 인생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기억은 언제까지나 선명하게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지닌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온 기억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그리워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작품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돌아보게 하며,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편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오는 11월 29일까지 세종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글: 허정은 기자 / 사진: (주)연극열전
eun@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