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사회는 혼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일하고, 혼자 살아가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스마트폰 하나면 길을 찾고, 음식을 주문하고, 정보를 얻고, 멀리 있는 사람과도 연결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가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의 사회는 이 상호 도움의 가치를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 성공은 개인의 능력으로 기록되고, 성취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불린다. 물론 한 사람의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노력 역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홀로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의 응원, 배려, 협업, 조언, 기다림이 보이지 않는 바닥이 되어 준다. 혼자 해낸 것처럼 보이는 일 뒤에는 늘 누군가가 놓아 준 작은 다리가 있다.
〈폼생폼사: 나는 니가 필요해〉는 바로 그 잊힌 연결의 가치를 당구대 위의 한 장면으로 끌어온 작품이다. 화면 왼편에는 푸른 당구대가 사선으로 길게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색색의 공들이 흩어져 있다. 오른편에는 노란 저고리와 반투명한 회색 치마를 입은 내숭녀가 서 있다. 그는 긴 큐대를 쥐고 있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도구를 사용해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흔히 삼발이라 부르는 보조 브리지, 큐 브리지, 혹은 큐 레스트다.
당구에서 이 도구는 손이 닿지 않는 공을 칠 때 사용된다. 몸을 아무리 길게 뻗어도 닿기 어려운 거리, 손목만으로는 안정적으로 만들기 힘든 각도, 혼자서는 애매하게 모자라는 순간에 큐 브리지가 등장한다. 큐 브리지는 공을 대신 치지 않는다. 선수의 실력을 대신하지도 않는다. 다만 큐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고, 흔들리는 손끝을 안정시키며, 한 번의 샷이 가능하도록 조건을 마련해 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브리지’라는 이름이다. 브리지는 다리다. 떨어진 두 지점을 잇고, 혼자서는 건너기 어려운 거리를 연결한다. 큐 브리지는 당구대 위에서 몸과 공 사이에 놓이는 작은 다리다. 닿을 수 없던 곳까지 닿게 하고, 불가능해 보이던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이 작은 도구가 작품 속에서 인간관계의 은유로 확장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전체를 그리고 싶었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브리지를 필요로 하고, 또 다른 때에는 누군가에게 브리지가 된다. 어느 날은 도움을 받아야 다음 샷을 칠 수 있고, 어느 날은 다른 사람의 큐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길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주고받음에 있다. 일방적인 희생도 아니고, 계산적인 거래도 아닌, 서로의 부족한 거리를 알아보고 그 사이에 잠시 다리를 놓아 주는 일이다.
오늘의 사회는 자립을 크게 말한다. 물론 스스로 서는 힘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립이 아무 도움도 받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면, 그것은 너무 외로운 이상이다. 실제 삶에서 건강한 자립은 오히려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 필요한 순간에 정중하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마움을 알고, 또 다른 순간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일. 그 순환 속에서 사람은 더 단단해진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기 방향을 잃지 않는 힘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탁하는 일을 너무 쉽게 민폐로 여기고, 도움받는 일을 능력 부족처럼 오해한다. 반대로 누군가를 돕는 일도 곧 손해로 계산되기 쉽다. 바쁘고 빠른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 주는 일을 망설인다. 그러나 창작과 노동, 사업과 육아, 배움과 관계의 세계는 결코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 하나가 나오기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얽힌다. 재료를 만드는 사람, 촬영과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 글을 읽어 주는 사람, 일정을 조율해 주는 사람, 아이를 돌봐 주는 사람, 곁에서 조용히 응원해 주는 사람까지. 결과물은 한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되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협업의 층이 겹겹이 쌓여 있다.
당구대 위의 공들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의 공이 다른 공을 치고, 그 충돌이 또 다른 방향을 만든다. 힘은 옮겨 가고, 각도는 바뀌며, 예상하지 못한 길이 열린다. 삶도 그렇다.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하루를 바꾸고, 작은 도움이 다음 선택의 방향을 바꾸며, 우연한 만남이 전혀 다른 길을 열기도 한다. 우리는 독립된 개인인 동시에 끊임없이 서로의 궤도에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다.
반투명한 한지 치마는 이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한복은 몸을 감싸며 단정한 외피를 만들지만, 얇은 한지의 결은 그 안쪽의 몸과 움직임을 완전히 숨기지 않는다. 겉으로는 혼자 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도구와 공간, 관계와 경험이 함께 몸을 떠받치고 있다. 한지와 수묵담채, 콜라주가 만들어 내는 이중의 표면은 우리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 사람은 언제나 혼자 해내는 척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관계의 흔적이 비쳐 보인다.
제목 중 일부인 “나는 니가 필요해”는 직설적인데, 그래서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필요하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괜찮은 척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척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다. 혼자서는 닿지 않는 공이 있다는 것을. 혼자서는 넘기 어려운 하루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받은 도움만큼 누군가에게 작은 다리가 되어 주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관계를 낭만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도움을 주고받는 일은 때로 복잡하고 어렵다. 선의가 부담이 되기도 하고, 부탁이 미안함으로 남기도 하며, 도와주고도 상처받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서로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자는 말이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 손을 내밀고, 상대의 몫을 빼앗지 않으면서 그의 가능성을 살려 주는 일이다. 큐 브리지는 큐대를 대신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큐대가 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잠시 길을 만들어 줄 뿐이다. 좋은 도움은 그런 것이다.
당구대 위에는 아직 승패가 정해지지 않은 공들이 놓여 있다. 내숭녀는 큐대를 들고 다음 샷을 준비한다. 그 순간 중요한 것은 혼자 멋지게 해내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도움을 받아 더 정확한 각도를 찾아내는 일,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샷이 가능하도록 조용히 다리가 되어 주는 일. 어쩌면 삶은 그렇게 완성되는지 모른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의 브리지 위를 지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26년 8월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전시 작품 완판, 6만 7402명의 국내 개인전 최다 관람객 기록 등으로 주목받았다.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에세이 《김현정의 내숭》, 컬러링북 《내숭이야기 컬러링북》, 《한국화를 배우는 시간: 개념편》, 《한국화를 그리는 시간: 실기편》 등이 있다. 미술강연과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로서 전통 회화와 동시대 시각문화를 연결하고 있으며,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교육·집필·칼럼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글_김현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