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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㉖] 반려견이 묻는 가족의 본질

김연수 기자
2026-08-14 10: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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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㉖] 반려견이 묻는 가족의 본질 (김현정, 〈결혼: 애견집사〉, 30.5 × 13.5 cm, 전통 습지 벽화법(프레스코), 석채, 2019.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말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한때 가족은 비교적 분명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와 자식이 한집에 살며 서로의 생계를 책임지는 모습. 그러나 지금의 가족은 그렇게 하나의 그림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혼자 사는 사람도 많아졌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늘었다. 아이 없이 살아가는 부부도 있고,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도 많다. 가족은 더 이상 혈연과 혼인만으로 완성되는 단어가 아니다.

그런데 사회의 질문은 여전히 오래된 틀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결혼은 언제 하니”, “아이는 언제 낳니”, “혼자 살면 외롭지 않니”라는 말들은 한 사람의 삶을 걱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정해진 가족의 순서를 확인하는 말이 되곤 한다. 그러나 삶은 이미 그 순서 바깥으로 흘러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배우자이고, 누군가에게 가족은 부모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매일 밥을 챙겨 주고 산책을 함께 나가는 반려견이다.

〈결혼: 애견집사〉는 바로 그 변화한 가족의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박수근의 〈길가에서〉를 떠올리게 한다. 박수근의 그림 속 인물은 아이를 업은 채 옆모습으로 서 있다. 전쟁과 가난, 결핍의 시대를 지나온 한국인의 삶 속에서 아이를 업은 여성의 형상은 모성, 생계, 생활의 책임을 상징하는 익숙한 이미지였다. 거칠고 질박한 표면, 절제된 색조, 단단한 인물의 윤곽은 고단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가족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필자가 익숙한 명화나 한국 근현대 회화의 이미지를 자주 다시 그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낯선 이미지보다 익숙한 이미지 앞에서 먼저 멈춰 선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면일수록, 그 안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더 민감하게 발견한다. 원작의 구도는 그대로인 듯한데 인물이 달라지고, 소품이 바뀌고, 시대의 물건이 끼어드는 순간 관객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왜 이것이 바뀌었을까. 왜 아이가 아니라 반려견일까. 왜 과거의 가족 이미지가 오늘의 반려동물 문화와 만났을까. 패러디는 익숙함을 빌려 낯선 질문을 여는 방식이다.

한국화에는 오래전부터 ‘임모’라는 개념이 있다. 옛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며 선과 구도, 정신과 호흡을 익히는 방식이다. 단순히 베껴 그리는 일이 아니라, 앞선 그림을 몸으로 통과하며 그 안에 담긴 시선과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다. 필자의 패러디 작업 역시 그 전통과 닿아 있다. 원작을 그대로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익숙한 형식을 오늘의 풍속 안으로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다. 과거의 그림을 오늘의 삶으로 옮겨 놓을 때, 우리는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결혼: 애견집사〉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등에 업힌 존재다. 박수근의 〈길가에서〉가 아이를 업은 여성을 통해 한국적 가족 정서와 생활의 무게를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에서 등에 업힌 것은 아이가 아니라 반려견이다. 인물은 옆을 향해 서 있고, 전체 구도 역시 익숙한 가족 이미지의 기억을 불러온다. 하지만 아이의 자리에 반려견이 들어오면서 그림의 의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열린다. 과거의 가족 도상 위에 오늘의 반려동물 가족 문화가 겹쳐지는 순간이다. 익숙한 어머니의 뒷모습이 어느새 ‘집사’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작품 속 여성은 반려견을 단순히 안고 있지 않다. 등에 업고 있다. 업는다는 행위는 한국 사회에서 돌봄의 가장 오래된 몸짓 가운데 하나다. 아이를 업고 장을 보고, 일을 하고, 길을 걷던 수 많은 여성들의 몸에는 생활과 생계, 돌봄이 한꺼번에 얹혀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그 자리에 반려견이 들어온다. 이는 아이를 대신한 장난스러운 치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늘의 가족 개념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숨어 있다.

필자에게도 반려견이 있다. 이름은 ‘현동’이다. 현정의 동생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처음에는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사람처럼 대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고 여겼다. 사료를 고를 때도 아주 최고급보다는 적당한 등급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금은 물도 한 수저씩 떠서 먹이고, 사료는 유기농 제품을 찾게 된다. 혹시 먼저 떠날까 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아 일주일에 한 번씩 스파를 보내고, 건강검진도 사람보다 더 자주 챙기게 된다. 강아지 맞춤옷까지 입혀 본 뒤에는 웃음이 났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어느새 가족보다 더 세심하게 그의 하루를 살피고 있었다.

이 변화는 우스우면서도 진지하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일은 단순히 귀여운 존재를 곁에 두는 일이 아니었다. 밥과 물, 산책과 병원, 목욕과 건강, 외출할 때의 걱정, 아플 때의 불안까지 모두 함께 떠안는 일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 세심히 보게 되고, 아프다고 설명하지 못하니 더 자주 살피게 된다. 사랑은 말로 시작할 수 있지만, 가족은 반복되는 돌봄 속에서 만들어진다. 하루에 몇 번 밥그릇을 확인하고, 물을 갈아 주고, 산책 시간을 맞추는 그 사소한 반복 속에서 어느새 한 생명이 삶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작품 제목의 ‘애견집사’라는 표현은 유쾌하면서도 정확하다. 사람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하루의 리듬은 반려견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언제 밥을 먹일지, 언제 산책을 나갈지, 어디에 맡길지, 어떤 병원을 갈지, 어떤 간식을 먹여야 할지 고민한다. 주인이라는 말보다 집사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돌보는 사람은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피고 맞추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여기서 ‘결혼’이라는 큰 제목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결혼은 오랫동안 가족의 출발점처럼 여겨져 왔다.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으면 가정을 이루며, 그 가정이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결혼은 더 이상 하나의 결말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혼을 해도 아이 없이 살 수 있고, 결혼하지 않아도 가족을 이룰 수 있으며, 반려견과의 생활이 한 사람의 정서적 기반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결혼 이후의 가족이 반드시 아이로 완성된다는 오래된 상상을 조용히 흔든다.

물론 이 그림은 반려견이 아이를 대체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을 이루는 기준이 무엇인지 묻는 데 있다. 가족은 피가 이어져야만 성립하는가. 법적 관계로 등록되어야만 가족인가. 아니면 매일 돌보고, 기다리고, 걱정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관계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가. 〈결혼: 애견집사〉는 이 질문을 박수근의 익숙한 가족 이미지 위에 올려놓는다. 과거의 모성 이미지가 오늘의 반려견 돌봄 이미지와 만나는 순간, 가족은 혈연의 울타리에서 생활의 관계망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반려동물이 가족이 되었다는 말이 아름답게만 들려서는 안 된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생긴다는 뜻이다. 요즘에도 많은 반려동물이 버려진다. 귀엽다는 이유로 데려오고, 키워 보니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한다. 산책이 필요하고, 병원비가 들고, 털이 빠지고, 짖고, 아프고, 늙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채 한 생명을 들이는 경우가 있다. 귀여움은 시작일 수 있지만, 책임은 훨씬 길다. 반려견은 장난감이 아니고,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소품도 아니다. 한 번 가족으로 맞이했다면 그 생의 끝까지 함께해야 하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 기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준비가 필요하듯,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도 최소한의 배움과 숙고가 필요하다. 사료와 산책, 배변과 훈련, 질병과 노화, 비용과 시간, 그리고 이별의 가능성까지 알아야 한다. “귀여우니까 한번 키워 보자”는 말은 너무 가볍다. 그 가벼운 말 뒤에 한 생명의 평생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유기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처벌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책임의 무게를 알게 하는 사회적 장치다.

이 작품의 재료와 질감도 그 의미를 더한다. 2019년에 제작된 〈결혼: 애견집사〉는 전통벽화 기법의 석채로 그려졌다. 거친 표면과 낮은 채도, 질박한 질감은 박수근 회화의 담담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오늘의 생활 감각을 그 위에 덧입힌다. 화면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오래된 벽에 남은 흔적처럼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 시대의 변화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가족의 모습은 요란하게 바뀌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등에 업힌 대상이 달라져 있는 방식으로 바뀐다.

박수근의 〈길가에서〉가 전쟁과 결핍의 시대에도 이어진 가족의 시간을 보여주었다면, 〈결혼: 애견집사〉는 저출산과 비혼, 1인 가구와 반려동물 문화가 공존하는 시대의 새로운 가족 초상을 보여준다. 등에 업힌 반려견은 조용히 몸을 맡기고 있다. 그 장면에는 거창한 선언이 없다. 다만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 사이의 체온이 있다. 가족은 어쩌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저출산을 걱정하고 가족의 해체를 말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사람들이 왜 기존의 가족 형태에서 멀어지는가일지 모른다. 결혼과 출산이 개인에게 지나치게 큰 책임과 비용으로 돌아올 때, 가족은 더 이상 당연한 선택이 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함께 사는 법을 찾는다. 반려견과의 생활은 그중 하나다. 외로움을 메우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돌봄과 정서적 유대를 다시 구성하는 삶의 방식이다.

〈결혼: 애견집사〉는 아이를 업은 어머니의 익숙한 이미지 속에 반려견을 슬며시 들여놓으며 묻는다. 우리가 가족이라고 믿어 온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같은 성을 쓰는 것일까. 같은 집에 사는 것일까. 아니면 서로의 하루를 기억하고, 아플 때 곁을 지키며, 밥과 잠과 산책의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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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㉖] 반려견이 묻는 가족의 본질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26년 8월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전시 작품 완판, 6만 7402명의 국내 개인전 최다 관람객 기록 등으로 주목받았다.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에세이 《김현정의 내숭》, 컬러링북 《내숭이야기 컬러링북》, 《한국화를 배우는 시간: 개념편》, 《한국화를 그리는 시간: 실기편》 등이 있다. 미술강연과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로서 전통 회화와 동시대 시각문화를 연결하고 있으며,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교육·집필·칼럼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글_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