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훈 대표의 다섯 번째 도전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작은 감자탕집에서 시작됐다. 여섯 달 동안 자리를 찾고 직접 공사 현장을 정리하며 문을 열었지만, 하루 매출은 10만 원 남짓이었다.
오늘의 청년감자탕순대국을 이야기하는 그의 기억은 손님이 줄을 서던 날보다, 한 사람이라도 찾아오길 바라던 시절로 먼저 향한다.
이 대표에게 장사는 일찍부터 가족의 생활과 맞닿아 있었다. 1981년생인 그는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에서 자랐다. 산 중턱 집에서는 나무를 태워 난방하고 마당의 펌프로 물을 길어 썼다. 아버지는 주물공장에 다녔고, 어머니는 밭일과 시장 판매 등으로 살림을 보탰다.
부모님은 리어카에서 호떡과 어묵을 팔다가 분식집과 식당, 치킨집에도 도전했다. 그 역시 중학생 때부터 전단지를 돌리고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후 백화점과 공장, 전기공사 업체에서도 일했다. 가족의 형편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은 일터가 달라져도 그대로였다.
군 전역 후 들어간 카드단말기 회사에서도 오래 일했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했지만 생활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스스로 가게를 열어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스물일곱 살 무렵이었다. 전 재산 1,800만 원을 들여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연탄고깃집 ‘연탄아저씨’를 마련했다.
두 번째로 연 유황오리 전문점은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뉴스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두 달 만에 폐업했다. 뒤이어 단골의 제안으로 남산 기념품 가게 앞에서 캡슐커피를 팔았다. 손님은 있었지만 수익을 나누고 나면 교통비 정도만 남았다. 손님이 찾아오는 가게와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장사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었다.
세 번째 도전을 접은 그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 광고 영업을 하고, 카드단말기 회사에서는 신입 급여부터 다시 시작해 팀장까지 올랐다. 이후 외식업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 급여가 절반 수준인 제주고기 프랜차이즈 회사로 옮겼다. 2015년 구조조정으로 퇴사한 뒤에는 처남인 이성원 셰프와 남양주 호평동에 ‘고기를 사랑하는 집’을 열었다.
네 번째 창업에는 주변의 도움도 있었다. 가족이 투자금 마련에 힘을 보탰고, 공사비가 늘어나자 인테리어 업체가 후불 결제를 도와줬다. 그렇게 마련한 가게를 알리기 위해 그는 전단지를 돌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지역 맘카페와 맛집 SNS 페이지를 활용하고, 페이지 운영자들과 페이스북 타깃 광고와 영상 제작도 공부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주변에 무한리필 고깃집이 생기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두 사람이 나누기에는 수익이 충분하지 않았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부터 손님을 불러오는 방법, 매출 뒤에 실제로 남는 돈까지. 가게를 운영하며 살펴야 할 것들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경험은 다음 메뉴를 고르는 기준이 됐다. 무한리필이 아니더라도 손님이 충분히 먹었다고 느낄 만한 음식을 내고 싶었다. 평소 좋아하던 감자탕이라면 합리적인 가격에 넉넉한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고 싶은 맛은 해장국처럼 얼큰하고 시원한 빨간 국물이었다. ‘감자탕이라 쓰고 해장국으로 읽는다’는 슬로건에도 그 방향을 담았다. 상에 놓였을 때 눈으로도 푸짐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훗날 브랜드의 얼굴이 된 높은 감자탕 탑에도 넉넉하게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담겼다.
방이동 매장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로 약 1억 2,000만 원을 모았다. 공사비를 아끼려고 직접 인부를 구했고, 새벽 5시부터 현장을 청소하고 정리했다. 그렇게 준비한 가게에 ‘이성원쉐프의청년감자탕’이라는 이름을 걸었다.
개업 후 두 사람은 호평동 고깃집과 방이동 감자탕집을 나누어 맡고 역할도 바꾸며 운영을 이어갔다. 이후 동업을 정리할 때 이 대표는 이 셰프에게 매장 선택권을 주었다. 이 셰프는 자리가 잡힌 호평동 고깃집을, 이 대표는 청년감자탕을 맡았다. 부채도 나누어 책임졌다.
이제 감자탕집을 꾸려가는 일은 그의 몫이었다. 사골을 오래 끓이고 머리고기를 직접 손질해 삶았다. 깍두기와 겉절이도 매장에서 준비했다.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일과 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과 가게를 알리는 일을 함께 해나갔다.
음식에 자신은 있었지만 매장을 아는 사람이 적다고 판단했다. 앞선 고깃집에서 익힌 홍보 경험을 다시 꺼냈다. 택시·버스 회사에 기사들을 위한 쿠폰을 돌리고 지역 맘카페에도 가게를 알렸다. 생활비까지 홍보에 보태며 손님을 만날 방법을 찾았다.
돌아보면 서툰 방법도 있었다.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 거리에 사람이 없어 주차된 차량에 전단지를 붙이기도 했다. 그는 차주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잘못된 방법이었다고 인정했다. 당시에는 항의 전화라도 오면 사과하고 음식을 대접하며 가게를 알리고 싶을 만큼 마음이 급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도전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준비가 부족했던 순간도 함께 꺼냈다. 처음 장사하던 자신에게는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봐라”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다만 노력만큼 준비가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게를 여는 마음과 운영해가는 현실 사이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조금씩 손님들의 반응이 나타났다. 푸짐하게 쌓인 감자탕을 사진으로 남겨 SNS에 올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온라인에 음식과 가게가 소개되면서 방송 촬영 제안도 이어졌다. 손님을 찾아 나서던 매장 앞에 손님들이 기다리는 줄이 생겼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끝까지 해보길 잘했다고 느꼈다.
가게가 자리를 잡은 뒤에는 일하는 방식도 돌아보게 됐다. 가족의 형편을 바꾸고 싶어 시작한 장사였지만, 일에 몰두하느라 정작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지 못했다. 이제는 직원들과 역할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혼자 오래 일하며 버티던 시절을 지나, 함께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가 오래 기억하는 손님 가운데는 들깨 알레르기 때문에 감자탕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던 여성이 있다. 이 대표는 당시 들깨가루를 기본으로 넣지 않고 원하는 손님에게 따로 제공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처음으로 감자탕을 먹어볼 수 있다며 기뻐하던 손님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고 한다.
그에게는 매일 만드는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처음 만나는 한 끼였다. 이 대표는 그 모습을 통해 음식 한 그릇이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전 재산을 들여 테이블 다섯 개를 놓았던 첫 가게부터 손님을 기다리며 밤을 보내던 감자탕집까지. 이정훈의 장사를 이어준 것은 결국 그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어준 사람들이었다. 그가 말하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원칙도 그 식탁에서 출발한다. 손님 한 명이 간절했던 시간을 기억하는 일. 그리고 오늘 찾아온 사람의 한 끼를 소홀히 하지 않는 일이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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