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속도로 걷는 얼굴
새해라는 시간도 비슷하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할 것 같지만, 정작 마음은 이미 지나온 시간 위를 천천히 걷고 있다.
기억은 늘 앞으로 가지 않는다. 대신 지나온 길 위를 다시 걸어가게 만든다. 어디서 멈추었는지,누구와 함께였는지, 그때의 나는 어떤 얼굴이었는지.
그래서 새해는 결심의 시간이기보다 기억을 천천히 걸어보는 시간에 가깝다.
영화 피렌체가 남긴 김민종의 얼굴도 그렇다.무언가를 향해 급히 나아가는 얼굴이 아니라, 지나온 삶의 결을 고요히 머금은 얼굴. 그 얼굴에는 시간이 남아 있고, 사람이 남아 있고, 지나온 선택들이 조용히 쌓여 있다.
삶의 속도는 언제나 같지 않다. 빠르게 달려야 할 때도 있었고, 멈춰 서 있어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삶을 만든 것은 빠른 시간보다 멈춰 서 있던 시간들이었다. 생각하게 했고, 버티게 했고, 다시 걷게 만들었던 시간들.
그래서 중년에게 걷는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이기보다 지나온 삶을 이해하며 나아가는 일에 가깝다. 김민종의 얼굴이 삶의 속도로 걷는 얼굴처럼 보였던 이유도 그 시간들을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서두르지 않아도,과장하지 않아도, 이미 얼굴 안에 시간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의 시간은 끝났지만, 피렌체는 사라지지 않았다.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누군가의 지난 시간 위에서, 여전히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
새해라는 시간 속에서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속도는 아니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자신의 삶을 이해하며. 삶의 먼 길은 결국 속도가 아니라 어떤 시간 위를 걸어왔는가로 완성된다.
김민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