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③] 말(馬)과 말(言), 여자는 말이죠 라고 말하다

김연수 기자
2026-02-26 16:49:41
기사 이미지
[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③]  말(馬)과 말(言), 여자는 말이죠 라고 말하다 (김현정, <내숭: 여자는 말이죠>, 130cm x 188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콜라쥬, 2015. /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백화점 1층 명품 코너 앞은 언제나 붐빈다. 새로 나온 가방을 직접 보겠다며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 한 손에는 스마트폰, 다른 한 손에는 카드를 쥐고 있다. 조금만 돌아서면 다이어트 식단, 운동 앱, 피부 관리 광고가 끝없이 따라온다. 덜 먹고, 더 예뻐지고, 현명하게 소비하라고 말하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하다. 누구보다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가 정작 여성의 욕망 앞에서는 유독 인색해진다. 가방을 좋아하면 허영이라고 하고, 예뻐지고 싶다고 말하면 철없다고 한다. “현실을 보라”고 말하면서도, “너무 현실적인 여자”는 또 비난한다.

나는 그 모순을 한 장의 그림으로 옮기고 싶었다. 한국마사회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내숭: 여자는 말이죠〉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제목부터 장난기가 가득하다. “여자는 말이야”라고 운을 떼는 한국어 구어의 리듬 위에, 동물 ‘말(馬)’이 슬그머니 올라탄다. 말과 여자, 전혀 다른 존재 같지만 사실 묘하게 닮아 있지 않을까. 좋음을 향해 솔직해지는 그 순간만큼은.

그림 속 나는 커다란 백마 위에 올라타 있다. 붉은 저고리를 입고, 그 위로 은근히 비치는 먹색 치마를 겹쳐 입었다. 말의 몸통은 캔버스의 가운데를 길게 가로지르며, 화면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런데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려보면, 두 개의 유혹이 바닥에 놓여 있다. 하나는 말 앞에 가지런히 놓인 탐스러운 당근, 다른 하나는 말 발굽 옆에 살짝 떨어져 있는 붉은 명품 가방과 꽃자수가 수놓인 하이힐이다.

말은 주저하지 않는다. 고개를 푹 숙여 당근을 향해 곧장 다가간다. 본능이 이끄는 방향을 있는 그대로 따라간다. 반면 말 위에 앉아 있는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아래를 빤히 내려다본다. 내 눈은 당근이 아니라, 그 옆의 붉은 가방과 구두에 꽂혀 있다. 살짝 숙인 고개, 조심스레 뻗은 손끝, 그러나 아직 닿지 않은 거리. 이 어정쩡한 간격 속에 ‘여자의 욕망’이 들어 있다.

말이 당근을 좋아하는 건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귀엽다”, “먹는 모습이 사랑스럽다”라고 말해 준다. 하지만 여자가 가방과 구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야기의 어조는 달라진다. “그래서 뭐가 남는데?”, “허영 아니야?”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욕망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욕망을 드러내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숭: 여자는 말이죠〉는 그 지점을 슬며시 비튼다. 말에게 당근은 삶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에너지일까, 아니면 훈련을 마친 뒤에야 받을 수 있는 보상일까. 여자의 가방과 구두는 단순한 사치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꾸며 세상과 마주 올라가는 갑옷과도 같은 것일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남의 욕망에는 관대하면서, 여성의 욕망에는 도덕과 이성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댔다.

나는 이 그림을 준비하며 실제 기수들과 인터뷰를 했다. 말이 각설탕과 당근 같은 단 것을 유난히 좋아하고, 사람처럼 러닝머신을 뛰고 수영장에서 수영 훈련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말이 갑자기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 말도 우리처럼 관리를 받고, 달콤한 것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지는구나.” 그 깨달음이 오자 붓이 비로소 움직였다.

그래서 이 그림은 욕망의 평행이론에 가깝다. 말과 여자는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향해 눈빛이 반짝이는 그 찰나는 똑같다. 식욕이든, 물욕이든, 혹은 인정 욕구이든, 인간과 동물은 어쩌면 그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나는 그 솔직함을 비난 대신 미소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 솔직함은 한복의 이미지와 맞부딪히며 더 선명해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한복은 여전히 단아함, 고상함, 비밀스러움의 상징이다. 몸을 차분히 가리고, 행동을 조심스럽게 만드는 옷. 그런데 ‘내숭’ 시리즈에서 나는 그 한복을 입고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기도 하고, 대형 케이크를 와작 베어 물기도 하며, 이번처럼 백마를 타고 가방과 구두를 탐내기도 한다.

그 과장된 일상 속에서 한복은 더 이상 얌전한 껍데기가 아니다. 나는 인물을 먼저 누드로 그린 뒤, 그 위에 얇은 한지를 염색해 붙여 한복을 입힌다. 반투명하게 비치는 살결과 주름은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라는 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사회가 기대하는 단정한 여성상 위에, 실제로 숨 쉬고 있는 욕망과 감정이 은근히 비쳐 나오는 순간이다.

〈내숭: 여자는 말이죠〉에서 붉은색은 그 욕망의 온도를 상징한다. 저고리의 붉은색, 말 등에 깔린 안장, 바닥의 가방과 구두까지 하나의 색으로 이어진다. 눈에 띄는 이 붉은색들은 말의 본능, 여자의 취향, 그리고 화면 밖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조용히 연결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볼 때, 우리의 눈에 스치는 색도 이렇게 뜨겁지 않을까.

나는 이 그림으로 말하고 싶었다. 계산하는 여자가 비정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게 만드는 시선이 비정하다고. 말에게 당근을 허락하듯, 여자에게도 가방과 구두, 혹은 그 어떤 욕망이든 조금 더 너그럽게 허락할 수는 없을까. 욕망을 숨기지 않고 “나는 이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그게 진짜 건강한 공동체가 아닐까.

오늘 당신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꽂혀 있는가. 말처럼 달콤한 당근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가, 아니면 한 번쯤 마음속에 품어 둔 붉은 가방과 구두를 몰래 떠올리고 있는가.

나는 말 위에서 슬쩍 몸을 숙이고, 당신은 화면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서로 다른 자리에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는 그 눈빛만큼은 닮아 있다. 본능이라 불러도 좋고, 취향이라 불러도 좋다.

여자는, 그리고 말(馬)은 솔직한 게 매력이라고, 이 그림 한 장으로 조용히 말해 보고 싶었다.

기사 이미지
[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③]  말(馬)과 말(言), 여자는 말이죠 라고 말하다 (김현정 작가 /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EBS <해요화 해요>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서울시 및 희망브릿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21세기 풍속도 〈내숭시리즈〉로 한국화의 POP을 대중화하며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는 ‘한국화의 아이돌’로 자리매김했고, 국내외 전시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글_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