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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⑩] 젊음은 왜 늘 가볍게 오해되는가

김연수 기자
2026-04-24 10: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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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⑩] 젊음은 왜 늘 가볍게 오해되는가 (김현정, <내숭: 스물일곱, 세월의 무게>, 130 x 189 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쥬, 2014. /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대학 강의를 나가서 보는 학생들의 표정은 어둡다. 취업, 진로,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얼굴에서 배어 나온다. 고민을 묻고서 듣고 있자면 오래전 학창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필자의 스무 살과 스물일곱 무렵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절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이상하게도 ‘좋을 때다’였다. 어른들은 청춘을 축복처럼 말했지만, 그 말은 종종 현재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방식으로 들렸다. 아직 어리니 괜찮다고,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 버틸 만하다고 말하는 동안, 정작 그 시간을 살아내는 사람은 오늘의 불안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한국 사회는 유독 젊음을 찬란하게 묘사하면서도, 젊은 사람의 고민은 가볍게 여기는 듯 하다.

〈내숭: 스물일곱, 세월의 무게〉는 바로 그 간극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화면에는 공원용 벤치프레스가 길게 놓여 있고, 한복 차림의 인물이 그 위에 누워 있다. 손에 든 역기는 언뜻 보기엔 무겁지 않다. 무게추도 크지 않고, 장면도 격렬한 운동이라기보다 잠시 숨을 고르는 자세에 가깝다. 하지만 그 가벼워 보이는 역기 아래 놓인 몸은 결코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배 위에는 잡지 한 권이 펼쳐져 있다. 생애 처음 필자의 인터뷰가 실렸던 매체다. 얇은 종이 몇 장이지만, 그 위에 적힌 문장들은 이상하게 무겁다. 한번 말해 버린 다짐, 일관되게 지켜야 할 것 같은 태도, 기대와 시선이 종이의 두께를 넘어 사람 위에 눌러앉는다. 이 작품은 역기의 중량이 아니라 말과 시간의 중량을 드는 장면이다.

이 작품에서 의미 있게 봐야 하는 것은 무게추의 ‘표정’이다. 중압감을 표현하기 위해 무게추는 반짝이는 쇳덩이가 아니라 녹이 잔뜩 슨 상태로 그려졌다. 오랫동안 버텨왔다는 흔적이다. 세월의 무게는 새것의 얼굴로 오지 않는다. 압박은 조금씩 스며들고, 기대는 천천히 부식되며, 사람은 어느새 녹이 슨 무게를 들어 올리고 있게 된다. 이 작품은 120호의 대작이다. 실제 작품 앞에 서면 화면이 주는 물리적 규모 때문에 인물이 감당하는 압박이 더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무게추 한편에 적힌 ‘KHJ 27yr’라는 글씨도 보인다. 김현정의 스물일곱을 새겨 넣은 이 작은 표식은, 보편적 청춘의 불안을 한 사람의 구체적인 나이와 시간으로 붙잡아 둔다. 결국 이 역기는 누구의 것이나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아주 정확히 한 사람의 스물일곱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게의 절대량이 아니라 체감의 차이다. 바깥에서 보면 스물일곱은 아직 젊고, 역기도 가볍고, 미래는 길어 보인다. 그러나 안에서 살아내는 사람에게 스물일곱은 결코 가벼운 나이가 아니다. 졸업을 앞두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간, 무엇이 될지보다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가 먼저 요구되는 시간,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이미 어른처럼 판단받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사회는 ‘너무 어리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결과와 책임을 요구한다. 아직 모자라다고 취급하면서도 동시에 빨리 증명하라고 몰아붙인다. 청년의 시간은 이렇게 늘 과소평가와 과잉기대 사이에서 찢긴다. 그래서 이 그림 속 작은 역기는 젊음의 가벼움이 아니라, 젊음을 가볍게 취급하는 시선의 폭력을 드러낸다.

작품의 조형 역시 그 정서를 정교하게 뒷받침한다. 한지 위 수묵담채와 콜라주로 완성된 반투명한 치마는 단정함과 불안을 동시에 품고 있다. 겉으로는 고요하고 예쁘지만, 그 아래로 다리의 윤곽과 벤치의 표면이 은근히 비친다. 내숭 시리즈가 오래 붙잡아 온 ‘겉은 단정하지만 속은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감각이, 이 작품에서는 나이와 시간의 문제로 확장된다. 파란 하이힐과 레이스, 리본 장식은 여전히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을 남겨 두지만, 길게 누운 몸과 다소 멍한 표정은 기대와 피로가 함께 실린 상태를 말한다. 젊음은 늘 생기 있고 가벼워야 한다는 사회적 이미지와, 실제로는 이미 지쳐 있는 몸의 감각이 한 화면에서 충돌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는 것도 있다. 그때의 무게가 과장이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삶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얼굴로 계속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결혼을 하면 관계의 책임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면 사랑과 동시에 돌봄의 무게가 따라온다. 회사의 직원으로서, 자녀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엄마로서, 아빠로서, 며느리로서, 사위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름표를 하나씩 더 다는 일과 닮았다. 사회적 역할은 자격처럼 주어지지만 실제로는 짐처럼 어깨에 얹힌다. 각 역할은 서로 분리되지도 않는다. 회사의 피로가 가정으로 이어지고, 가정의 책임이 다시 일의 표정을 바꾼다. 젊을 때는 미래가 막막해서 무거웠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져서 무거워진다. 결국 삶은 가벼워지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익숙해질 뿐이고, 익숙해진 무게 위에 또 다른 무게가 얹힌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 스물일곱의 고민을 ‘그때는 몰랐지’라고 쉽게 접어둘 수가 없다. 그 시절의 무게는 미숙해서 무거웠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거웠다. 다만 그때는 그 무게를 설명할 언어가 부족했고, 주변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말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또 다른 역할의 무게를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고단함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은 앞선 무게와 뒤의 무게가 서로를 지우지 않고 겹쳐 쌓이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청춘의 불안은 이후의 책임과 연결되고, 이후의 책임은 다시 젊은 날의 조급함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세월의 무게란 단순히 나이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감당해야 할 이름과 기대와 책임이 계속 늘어나는 일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말 ‘좋을 때’라는 말은 누구를 위한 말일까. 지나온 사람의 추억에는 젊음이 가볍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청춘은 결코 낭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나이를 숫자로 구분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각 나이가 짊어지는 무게를 들여다보는 데는 서툴다. 누군가에게 스물일곱은 이미 역기처럼 버거운 시간이고, 또 누군가에게 마흔은 여전히 방향을 묻는 시간이다. 중요한 것은 몇 살인가가 아니라, 그 나이에 어떤 무게를 들고 있는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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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⑩] 젊음은 왜 늘 가볍게 오해되는가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2013년 개인전 〈내숭 이야기〉를 시작으로 〈내숭올림픽〉, 〈내숭놀이공원〉까지 큰 주목을 받았다. 2016년 개인전은 국내작가 개인전 최다 관람객 6만7402명을 기록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초청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2017년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이름을 올렸고,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25종에 수록되었다. EBS ‘해요와 해요’서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강연과 전시, SNS를 통해 한국화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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