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북촌의 한옥 문화공간 진현재(JinHyunJae)에서 지난 9월 10~22일 열린 기획전 ‘LAYERED’가 관람객들의 관심 속에 막을 내렸다.
이번 전시는 패브릭, 유리, 동양화, 서양화, 컨템포러리 민화 등 서로 다른 재료와 장르를 다루는 김미식, 김소곤, 데이비드 염, 서지은, 이정희, 조여영 등 여섯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LAYERED’라는 제목처럼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작가의 시간과 기억,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한 공간 안에서 겹겹이 쌓이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한옥이라는 공간이 가진 오래된 결, 자연스러운 빛, 마당과 문살의 선 위에 각기 다른 작가의 작품이 놓이면서 작품과 공간이 서로를 설명해주는 듯한 장면들이 만들어졌다. 하나의 장르나 특정한 시선으로 묶기보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도록 구성한 점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었다.

패브릭 아티스트 김미식은 섬유라는 부드러운 재료를 회화적 언어로 확장해온 작가다. 국내외 개인전과 그룹전을 이어왔으며 ‘Masters 2 Art Quilt’ 작가 선정, Quilt Visions와 Quilt National 등 국제 섬유미술 무대에서도 활동해왔다. ‘달항아리’를 비롯한 작품에서는 천과 섬유의 물성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질감과 한국적인 정서가 한옥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데이비드 염(David Youm)은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색채와 일상의 오브제를 통해 삶과 내면의 이야기를 회화로 풀어낸다. 그의 작품 속 의자와 생활의 장면들은 휴식과 관계, 삶의 자리를 은유하며, 이번 전시에서는 특유의 색감으로 공간에 생동감을 더했다.

유리작가 김소곤은 빛을 통과시키고 굴절시키는 유리의 특성을 활용해 자연에서 경험한 빛과 움직임을 조형화한다.

서울공예박물관 시민소통 공예프로그램 선정 전시와 여러 공모전 등을 통해 작업을 이어왔으며, 투명한 유리 안에 담긴 빛과 색의 변화는 한옥의 자연광과 만나 더욱 섬세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동양화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서지은은 앵무새와 새장, 열대 식물 등 익숙하면서도 상징적인 이미지를 자신만의 색채로 구축해왔다.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앵무새와 보호와 구속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새장을 통해 현대인의 관계와 정체성을 바라보며, 전통회화의 바탕 위에 세련된 색감과 동시대적인 감성을 더한다.

‘보보(步步)’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정희는 전통회화와 현대적인 화면 구성, 동양과 서양의 조형 언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다.

대갈현대민화공모전 대상 수상과 파리 국제예술공동체 레지던시, 파리 개인전 등 국내외 활동을 이어왔으며, 전통 소재를 현대적 공간감과 디자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특징이다.

조여영은 전통민화를 회화 안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패션, 문화상품, 공간, 타투를 연상시키는 현대적 이미지까지 확장해온 작가이자 디자이너다.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문화상품과 창작민화를 연구했으며, 민화를 활용한 한복 패션쇼와 문화상품 작업, 민화부티크와 브랜드 활동 등을 통해 전통을 일상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조여영은 민화의 상징과 장식성을 현대적 화면 구성과 감각적인 이미지로 변주했다. 익숙한 민화적 요소가 타투와 패션, 오브제를 연상시키는 새로운 언어로 확장되면서 전통이 오늘의 취향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를 품은 진현재 역시 ‘LAYERED’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서울 북촌의 골목 안에 자리한 진현재는 오래된 한옥의 시간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 오늘의 예술과 사람을 초대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화이트큐브처럼 작품만을 분리해 보여주는 전시장이라기보다, 나무 기둥과 창호, 마당과 햇빛, 계절의 변화까지 전시의 일부가 되는 곳이다.
진현재의 공간을 이끌고 있는 올리비아 최 관장은 전시와 문화기획을 통해 전통 한옥이 가진 시간성과 오늘의 예술을 연결하는 데 주목해왔다. 작가의 작품을 단순히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과 작품,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진현재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다.
진현재에서는 작품을 ‘보는 일’뿐 아니라 그 작품을 만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작가와 관람객이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은 한옥의 문을 열고 들어선 관람객이 작품을 천천히 둘러보고, 마당과 방을 오가며 머무는 시간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진현재는 전통을 과거의 것으로 고정하기보다 새로운 감각과 사람을 만나며 계속 변화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뿐 아니라 해외 작가와의 문화교류, 아티스트와 브랜드의 협업, 북토크와 살롱, 다양한 문화기획을 통해 북촌이라는 장소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번 ‘LAYERED’ 역시 그러한 방향을 잘 보여준 전시였다. 서로 다른 세대와 장르, 재료를 가진 여섯 작가가 한옥 안에서 만나면서 전통과 현대, 공예와 회화, 일상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었다.
진현재는 본전시가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을 조금 더 이어가기 위해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LAYERED ART GOODS’ 행사를 진행한다.
이번 굿즈전은 상시 판매 방식이 아니라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본전시에서 만났던 작가의 이미지와 감성을 보다 가까운 일상의 물건으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마련한 작은 후속 행사다.
전시가 끝났다고 해서 관람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작품에서 받은 인상이 작은 오브제와 굿즈로 이어지고, 이를 다시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것 역시 전시를 오래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작품 및 굿즈 관련 문의와 예약은 진현재 공식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가능하다.
진현재의 가을 문화행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는 10월2일~11일 프랑스 작가 3인이 참여하는 특별전이 예정돼 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서로 다른 문화적 감수성이 북촌 한옥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이번 전시는 진현재가 이어가고 있는 국제 문화교류의 흐름을 한 단계 더 확장하는 자리다.

올리비아 최 관장은 “좋은 공간과 좋은 작품,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며 “전시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만남이 시작되고, 그 만남들이 쌓여 진현재만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옥에서 만난 여섯 작가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나의 장면으로 엮었던 ‘LAYERED’. 본전시는 끝났지만 그 여운은 사흘간의 굿즈전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프랑스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다시 그 공간을 채운다.
작품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사람의 기억이 남고, 그 기억 위에 또 다른 예술이 쌓인다. 그렇게 진현재는 한 번의 전시를 넘어, 사람과 작품과 시간이 차곡차곡 겹쳐지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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