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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⑨] 한국의 비너스는 여기서 태어난다

김연수 기자
2026-04-10 10: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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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⑨] 한국의 비너스는 여기서 태어난다 (김현정, <21세기 사우나: 비너스의 탄생>, 130 x 184 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쥬, 2017. /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은 이제 외국인들에게 한 번쯤 꼭 와보고 싶은 나라가 됐다. 한국인의 화장법을 따라 하고, 식단을 궁금해하고, 편의점과 올리브영, 성형외과와 피부과, 심지어 일상의 말투와 휴식 방식까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소비하는 K-컬쳐의 시대다. 그런데 이 찬란한 유행 뒤에는 잘 보이지 않는 진실이 있다. 한국의 비너스는 신화처럼 바다 거품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생활의 열기와 피로 속에서 천천히 빚어진다.

〈21세기 사우나: 비너스의 탄생〉은 바로 그 장면을 서울 강남의 ‘궁전보석사우나’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벽면에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큼직하게 걸려 있고, 그 아래 디지털 온도계는 66도를 가리킨다. 그러나 화면의 진짜 주인공은 액자 속 여신이 아니다. 한 사람은 주황색 수건을 뒤집어쓴 채 바닥에 주저앉아 식혜를 빨대로 들이켜고, 다른 한 사람은 검은 반투명 천을 걸친 채 팔을 길게 뻗어 팔뚝살을 문지른다. 조개 위에 선 비너스 대신, 나무 데크 위에 앉은 두 여인이 등장하는 이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적확하다. 한국의 아름다움이 탄생하는 장소를 묻는다면, 이 그림은 주저 없이 사우나를 가리킨다.

이 작품의 핵심은 고전적 미의 상징과 생활의 오브제가 한 화면에서 보이는 방식에 있다. 66도라는 숫자는 단순한 온도가 아니라 몸을 관리하라는 사회적 압박의 체감 온도처럼 보인다. 식혜는 땀을 뺀 뒤의 달콤한 보상이지만, 동시에 살을 빼겠다면서도 달콤한 위안을 포기하지 못하는 현실의 모순을 드러낸다. 팔뚝을 문지르는 몸짓은 미용의 의식이자 자기 검열의 습관이다. 모래시계는 이 모든 관리가 시간의 지배 아래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한지 위 수묵담채로 스민 돌벽과 나무 바닥의 질감, 과장되지 않은 피부의 선묘는 이 장면을 화려한 뷰티 광고가 아니라 생활의 풍속으로 붙들어 놓는다. 아름다움은 여기서 상품이기 전에 노동이고, 노동이기 전에 습관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K-뷰티를 자랑하는 그림이면서도, 동시에 그 이면을 드러내는 그림이다. 세계는 한국인의 매끈한 피부와 정교한 화장법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이 작품이 보여 주는 것은 완성된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그것도 혼자 거울 앞에서 완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함께 땀을 흘리고 수다를 나누며 쉬는 공동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찜질방은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 몸이 잠시 체면을 내려놓는 장소다. 화장을 지운 얼굴, 흐트러진 자세, 적당히 늘어진 복장으로도 함께 있을 수 있는 곳.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속 비너스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태어나는 여신이 아니라, 지친 몸을 달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생활인에 가깝다.

하지만 이 사우나는 낭만적인 휴식처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쉬러 왔는데도 몸을 매만지고, 땀을 빼면서도 간식을 먹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으면서도 끝내 자기 몸을 평가한다. 이 모순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사회가 몸을 대하는 방식이다. 편해지라고 말하면서 관리하라 하고, 자신을 사랑하라 하면서 끝없이 고치라고 한다. 자연스러움을 찬양하면서도 결점 없는 표면을 요구한다. 휴식조차 생산성과 외모 관리의 일부로 편입된 시대, 사우나의 열기는 단지 방 안의 온도만이 아니라 동시대인의 긴장과 불안을 함께 데운다.

그럼에도 이 그림은 비관으로만 기울지 않는다.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이미 완성된 채 도착하는 존재라면, 김현정의 비너스는 덜 완성된 몸으로도 충분히 살아 있는 존재다. 한국의 비너스는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피로와 욕망과 자기 돌봄의 모순을 끌어안고도 웃을 줄 알아서 아름답다. K의 시대가 왔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세계가 궁금해하는 한국의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 정교한 화장 기술일까, 빛나는 피부일까. 어쩌면 그보다 먼저, 이렇게 뜨거운 현실 속에서도 끝내 자신을 돌보고 서로를 위로하는 생활의 기술 아닐까. 사우나의 땀과 식혜, 견디는 몸들 사이에서 한국의 비너스들은 오늘도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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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⑨] 한국의 비너스는 여기서 태어난다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한국의 초상’이라는 시선으로 그려 왔다. EBS ‘해요와 해요’에서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서울시와 희망브릿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와 강연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글_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