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한바퀴' 이만기가 휴전선과 맞닿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의 고석정, 대마리 마을, 오대쌀 빙수 카페, 직탕폭포, 지역 화가의 작업실, 맷돌 공방, 오대쌀 밥상, DMZ 평화의 길 백마고지 코스 등을 차례로 찾아가 전쟁과 분단의 상처 위에서 평범하지만 단단한 삶을 일구는 사람들을 만난 여정이다.

한반도의 허리이자 북녘과 맞닿은 접경지역 철원군. 오래도록 전쟁과 분단의 상징으로 기억돼 온 땅이지만, 현무암 절벽과 너른 철원평야, 청정한 물길 사이에서는 오늘도 생명력 넘치는 일상과 평화를 향한 소박한 바람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분단의 현실을 가까이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그 아픈 역사를 생명과 희망의 이야기로 바꿔온 철원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KBS 1TV '동네 한 바퀴' 385회는 한탄강의 깊은 시간부터 백마고지의 치열했던 전장, 농부와 장인, 지역 예술가의 일상까지 평화의 의미를 차분히 따라가 본 방영분이다.

수억 년의 시간을 품은 한탄강, 현무암 절벽과 고석정, 여정을 시작하는 물길
북한 강원도 평강에서 발원해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한탄강은 오랜 화산활동이 빚어낸 독특한 지질 경관을 품고 있다. 현무암 절벽과 주상절리, 폭포가 이어지는 한탄강은 우리나라 최초의 강 중심 지질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이름난 곳이다.

한탄강 절경을 대표하는 고석정은 강 한가운데 우뚝 솟은 높이 약 15m의 바위와 주변 절벽이 어우러져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약 1억 1천만 년 전 만들어진 화강암이 현무암 용암류 아래 묻혔다가 오랜 침식 끝에 모습을 드러낸 고석은 깊은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통통배에 몸을 싣고 절벽 사이를 따라가며 화산이 남긴 장엄한 자연의 이야기를 만나는 곳이다.

백마고지 아래 지뢰밭, 황무지를 삶의 터전으로 바꿔낸 전략촌 사람들의 피땀

낮에는 밭과 논을 일구고 밤에는 총을 들고 마을을 지켜야 했던 세월에는 지뢰와 폭발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희생도 있었다. ‘피 흘려 찾은 땅, 피땀 흘려 개척했다’라는 개척비 문구처럼 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비옥한 들녘으로 바꿔냈다. 한때 죽음의 위험이 드리운 지뢰밭은 오늘날 오대쌀이 자라는 풍요로운 논으로 변해 평화를 일군 세월의 의미를 전한다.

오대쌀 빙수 한상, 장모와 사위의 특별한 디저트, 농산물을 한 그릇에 담은 맛
철원군청이 자리한 갈말읍에서는 철원의 대표 특산물인 오대쌀을 색다르게 즐기는 오대쌀 빙수를 만나볼 수 있다. 새하얀 우유 얼음 위에 찰진 오대쌀을 섞은 오대쌀크림을 올리고, 통팥과 오대쌀 쑥떡, 오대쌀 현미 등을 반찬처럼 곁들여 먹는 모습이 정갈한 한 상 차림을 닮았다.

아이를 낳은 뒤 처가가 있는 철원으로 온 사위 임형민 씨와 15년 경력의 요리 강사 장모 엄숙자 씨가 수십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메뉴다. 사위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장모가 이를 맛으로 구현하며 디저트를 빚어냈다. 파프리카와 토마토 등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제2의 고향 맛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가족의 따뜻한 도전이 담긴 명소다.

한국의 나이아가라, 거대한 현무암 암반 위로 쏟아지는 한탄강의 시원한 물줄기
한탄강 물길을 따라가면 넓은 현무암 암반 위로 거센 물줄기가 쏟아지는 직탕폭포를 만난다. 높이는 약 3m로 비교적 낮지만 너비가 80여m에 이르는 계단형 폭포라 멀리서 바라보면 장대한 물의 벽이 펼쳐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넓게 퍼진 폭포의 모습 때문에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대표 자연 명소다. 검은 현무암 위를 쉼 없이 흐르는 물줄기와 주변의 푸른 풍경이 어우러져 한탄강 지질지대만의 특별한 매력을 보여준다. 현무암 돌다리를 건너 폭포 가까이에 다가서면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자연의 힘찬 생명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고향의 골목과 사람을 화폭에 담는 화가, 어르신들의 늦깎이 예술을 응원하는 시간
화지리에는 오래된 담벼락과 골목, 고향 사람들의 표정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김선경 작가가 있다.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에도 어린 시절 바라본 평야와 고향 풍경을 잊지 못해 다시 돌아왔다는 작가다.

고향이 자신을 화가로 길러줬다고 말하는 김선경 작가는 그 마음을 돌려주기 위해 6~7년 전부터 농촌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가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뒤늦게 붓을 잡은 어르신들이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하도록 응원하며, 평범한 하루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돕는다. 소박한 골목과 사람들, 고향의 평화로운 일상을 따스한 색으로 기록하는 지역 예술가의 이야기다.

현무암으로 빚은 전통 맷돌, 50년 장인의 손끝, 아들에게 이어지는 돌 이야기
제주도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현무암이 산출되는 철원은 조선시대부터 맷돌 제작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현무암으로 만든 전통 맷돌은 벌레가 먹은 듯 구멍이 숭숭 난 독특한 질감 때문에 고석매라 불리며, 동송읍의 백성기 장인은 50여 년 동안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젊은 시절 영화관 간판을 그리던 화공이었던 백성기 장인은 평야 곳곳에 널린 현무암에 매료돼 돌과 인연을 맺었다. 전통 맷돌에만 머물지 않고 자동 맷돌과 커피 원두용 맷돌까지 개발하며 맷돌의 새로운 쓰임을 찾아왔다. 이제는 아들 재현 씨에게 기술과 마음을 전하며, 현무암의 고장에서 이어져 온 맷돌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청정 철원평야의 보약, 농부 부부가 직접 기른 제철 채소로 차린 한 상
백마고지 아래 너르게 펼쳐진 평야는 밥맛 좋은 철원 오대쌀의 대표 산지다. 현무암에서 비롯된 점토질 토양과 북녘에서 흘러드는 청정한 물, 큰 일교차와 풍부한 일조량이 더해져 쌀알은 단단하고 찰지게 영근다.

동송읍 대마리에서 직접 지은 오대쌀 솥밥과 손수 기른 채소로 밥상을 차리는 농부 부부는 땅이 내어준 먹거리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갓 지은 솥밥에 제철 채소 반찬, 쌀뜨물로 감칠맛을 더한 생선구이와 된장찌개까지 정갈한 한 상에 농부의 넉넉한 마음이 담긴다. 중국에서 시집와 처음에는 쌀 씻는 일도 낯설었던 백영애 사장님은 이제 누구보다 오대쌀의 맛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전협정 66년 만에 열린 평화의 길, 백마고지에서 마주하는 전쟁의 기억과 분단 현실
2019년 처음 문을 연 DMZ 평화의 길은 비무장지대의 생태와 평화의 가치를 직접 걸으며 느끼도록 마련된 탐방길이다. 인천 강화에서 강원 고성까지 접경지역 10곳을 잇는 11개 테마 노선 가운데 백마고지 코스는 전쟁의 상흔이 짙게 남은 백마고지 일대를 중심으로 약 12km 이어진다.

사전 신청과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면 평소 민간인 출입이 제한된 구역을 걸을 수 있다. 1952년 열흘 동안 고지의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뀔 정도로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의 현장을 바라보고, 남방한계선 철책 가까이를 걸으며 분단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생명과 평화의 땅으로 나아가려는 의미를 되새기는 길이다.

전쟁의 흔적이 가장 깊게 남은 땅에서 자연과 농업, 예술과 전통 기술을 통해 오늘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곳곳을 따뜻하게 채운다. 차가운 철책 너머를 바라보면서도 자기 삶의 터전을 묵묵히 지키고, 새로운 맛과 예술, 희망을 만들어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는 2026년 9월 5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 KBS 1TV '동네 한 바퀴' 385회 ‘평화, 길을 걷다 –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편에서 공개된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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