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수현과 고(故) 김새론 유족 간의 법적 분쟁이 당초 '미성년자 그루밍 의혹'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르며 논란의 본질은 흐려지고 있다. 사건의 중심이었던 교제 시점과 위법성 논란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고, 고인의 과거 연애사까지 도마 위에 오르며 자극적인 소비와 신상 추적으로 번지고 있다.
논란은 지난 3월 김새론 유족 측이 "고인이 만 15세였던 2015년부터 김수현과 연인 관계였으며, 약 6년간 교제가 이어졌다"고 주장하며 시작됐다. 유족은 2016년과 2018년에 나눈 메시지, 손편지 등을 공개하며 두 사람의 미성년자 교제를 주장했다. 이에 김수현은 지난 3월 말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시기의 카카오톡 메시지는 내가 보낸 것이 아니며, 실제 교제는 김새론이 성인이 된 2019년 여름부터 2020년 가을까지"였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김수현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아이돌 출신 배우 A씨와 연인 관계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유족이 주장하는 '동시 교제'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해석을 낳았지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김수현의 전 여자친구로 알려진 아이돌 출신 여배우의 신상을 추측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며, 무관한 인물들이 2차 피해를 입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1일 김새론이 고등학생 시절 연상의 유명 아이돌 멤버 C씨와 교제했고, 이후 2022년 재회해 2023년 초 결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시기는 김새론이 음주운전 사고로 논란에 휩싸였던 시점과 겹치는데, C씨가 생활고를 겪던 김새론에게 금전적 지원을 했다는 정황도 함께 알려졌다. 심지어 김새론이 지인들에게 그를 '남자친구'로 소개했다는 내용까지 언론을 통해 퍼졌다.
결국 본래 '그루밍 범죄 여부'라는 중대한 법적 쟁점은 희미해지고, '김새론이 누구와 언제 연애했는가'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논쟁의 중심을 차지하게 됐다. 일방적인 제보, 확인되지 않은 녹취, 과거 연인의 실명 언급 등은 고인의 인격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번지고 있으며, 사건과 무관한 제3자에게까지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가수 WOODZ(우즈)는 김새론의 과거 연인으로 지목되며 곤란을 겪었다. 소속사는 "사생활이라 확인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사실 확인 없는 신상 노출과 추측성 보도는 망자의 명예는 물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까지 위협하고 있다.
현재 김수현 측은 유튜버와 유족 측을 상대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및 약 12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 역시 김수현을 아동복지법 위반 및 무고 혐의로 고소하며 맞대응에 나선 상태다. 서울 강남경찰서와 서대문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두 사람과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은 총 10건에 이른다.
김새론은 2009년 영화 '여행자', 2010년 '아저씨' 등을 통해 아역 배우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마녀보감', '하이스쿨: 러브온', '사냥개들' 등에서 성인 배우로서의 입지도 넓혀왔다. 그러나 지난 2월, 25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죽음 이후에도 그녀는 논쟁과 폭로의 중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다시 세간의 입에 오르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 연예인의 사생활을 넘어, '진실'이라는 명분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 입고 있는가를 되묻게 한다. 법적 공방이 진행 중인 지금, 무분별한 과거 파헤치기보다는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지혜 기자 bjh@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