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양윤호 3부작 <영화를 꿈꾸던 사람, 사람을 담는 영화> [bnt K-무비 리더|양윤호①] 바다 너머를 꿈꾸던 소년, 영화로 세상과 만나다

어머니의 걱정과 친구들의 응원, 스승 유현목의 가르침까지…‘유리’에서 ‘아이리스’로, 사람들 곁에서 배운 영화와 삶
김민주 기자
2026-11-02 11: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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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유노우필름)



어머니는 아들이 경찰이 되기를 바랐다. 아들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어머니는 반대했다. 그런데 뒤에서는 아들이 가려는 길을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영화가 무엇인지 잘 몰라도, 자식의 앞날은 외면할 수 없었다. 양윤호 감독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그 마음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은 제주 한림이다. 여름이면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속을 헤엄치고 높은 바위에서 다이빙을 했다. 친구들과 산과 들을 내달렸다. 바람에 흔들리던 풀잎과 나무, 그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이 눈에 남았다. 훗날 영화를 만들 때도 꺼내 보게 되는 풍경들이다.

마냥 밝기만 한 어린 시절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소년에게는 문득 말수가 줄어드는 순간이 있었다. 어머니는 홀로 자식을 돌봤다. 외할머니는 바다에서 갓 캐어낸 먹을거리를 손에 쥐여줬다. 가족의 사랑 속에서도 아버지의 빈자리는 남았다. 소년은 한림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 너머를 궁금해했다.

극장에서 본 ‘로보트 태권브이’도 마음을 흔들었다. 커다란 로봇이 움직이는 화면 앞에서 상상의 즐거움을 만났다. 그렇다고 곧장 감독을 꿈꾼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었다. 주변에서 영화에 열정을 쏟던 선배와 친구들이 조금씩 그의 마음에 들어왔다.

진로를 정한 계기는 뜻밖에도 경찰대 시험이었다. 재수 시절, 어머니는 경찰대에 가는 아들을 두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하려는 마음으로 시험을 봤다. 그런데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지역 신문에 이름이 실리고 학교에서도 축하 전화가 왔다.

주변이 기뻐할수록 마음은 복잡해졌다. 사람들은 그가 경찰이 될 것처럼 기대했다. 정작 자신은 아직 그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남들이 바라는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에 거리가 있었다.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진지하게 들여다봤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며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그것을 나눌 길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주변에서 선뜻 응원할 만한 진로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반대도 컸다. 그래도 몇몇 친구들은 믿어줬다. “윤호야, 잘해봐라.” 거창한 약속은 없었다. 그 짧은 말이 불안한 청년에게 힘이 됐다. 영화의 길을 택한 뒤 그 선택에 대한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유현목 감독을 만났다. 직접 만든 단편을 놓고 스승 곁에서 거의 석 달 동안 편집을 배웠다. 장면을 어디서 끊고 어떻게 이어 붙일지 살피는 시간이었다. 촬영한 것을 순서대로 붙인다고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화면을 고르고 연결하는 과정에도 감독의 생각이 담겼다.

그러나 학교 밖 현장은 달랐다. 대학에서 공부한 영화와 실제로 만들어지는 영화 사이에는 간격이 있었다. 조감독이 된 그는 편집을 두고 선배 감독과 의견을 나누고 논쟁도 했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고 여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극장에서 관객의 반응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졌다. 머리로 따진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관객의 마음이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다. 막막한 마음에 유현목을 찾아갔다. 스승은 조감독일 때 배우는 것이라고 일러줬다. 감독을 돕는 자리에서 연출의 모든 과정을 배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힘겨운 시간을 지나던 제자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때의 시행착오가 훗날 자기 영화를 만들 때 버팀목이 됐다.

유현목의 ‘말미잘’에 조감독으로 참여한 경험은 첫 장편으로 이어졌다. 스승은 하늘과 땅, 사람이 한 화면에 함께 담기는 구도를 원했다. 양윤호는 그 뜻을 이해했지만 촬영 여건 속에서 충분히 구현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스승이 그리려던 화면을 자신의 영화에서 이어보고 싶었다.

가슴에 품어뒀던 박상륭의 소설 『죽음에 관한 한 연구』를 다시 꺼냈다. 깊이 빠져들어 읽었지만 영상으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던 작품이었다. 이제는 그 어려운 이야기에 도전하고 싶었다. 영화에도 철학을 담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첫 장편 ‘유리’가 나왔다. 1996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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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유노우필름)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놓은 뒤, 스승의 반응을 기다렸다. 돌아온 말은 예상과 달랐다. “젊어서 예술 하지 마라. 늙어서 외롭다.” 더 큰 격려를 기대했던 제자는 실망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말에 담긴 걱정을 헤아렸다. 예술의 길에서 고독을 겪은 스승이 제자의 앞날을 염려하고 있었다.

또 하나 잊지 못하는 말이 있다. 대학 시절 단편의 편집을 마친 뒤 들었던 말이다. “너는 네 이름이 걸린 첫 작품을 그렇게 함부로 하고 싶냐?” 자기 이름을 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배웠다. 빨리 끝내는 것보다 충분히 살피는 일이 먼저였다. 그 가르침은 이후 작품을 대하는 기준이 됐다.

‘유리’ 이후에는 ‘리베라 메’, ‘바람의 파이터’ 등 대중영화로 발걸음을 넓혔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단순했다. 자신이 관객이라면 보고 싶은가. 그 안에 새로움이 있는가. 익숙한 방식보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편한 길을 알면서도 어려운 작품에 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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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유노우필름)




그 길에서 배운 것은 감독 혼자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배우는 인물의 마음을 깊이 살핀다. 스태프는 그 마음을 화면과 소리로 옮길 방법을 찾는다. 감독이 준비한 생각보다 더 좋은 의견이 나올 때도 많다. 그에게 현장은 직함보다 좋은 생각이 먼저인 곳이다. 막내의 의견이라도 영화에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인다.

안성기에게 배운 태도도 남아 있다. ‘말미잘’ 촬영 당시, 배우는 한겨울에 비를 맞고 찬 바다에 들어가야 했다. 힘든 내색 없이 촬영을 이어갔다. 의상이 인물에게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직접 손질했다. 누구보다 먼저 준비하고 동료를 배려했다. 양윤호는 그 모습에서 프로가 무엇인지 봤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는 성실함의 힘을 다시 배웠다. 빠듯한 일정은 순간의 열정만으로 버틸 수 없었다. 피곤해도 기복 없이 준비해야 했다. 감독이 충분히 준비하면 배우와 스태프의 수고도 줄어든다. 좋은 장면을 얻으려는 마음에는 함께 만드는 사람을 살피는 책임도 따라야 했다.

공들인 작품이 기대와 다른 평가를 받을 때는 괴로웠다. 젊어서는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 시선이 서운했다. 세월이 흐르며 관객의 자리를 이해하게 됐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니 같은 영화도 다르게 볼 수 있었다. 관객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었다. 감독에게는 다음 작품으로 다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의 그가 첫 영화를 준비하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시선을 더 넓히라는 것이다. 고집만으로는 관객과 만날 수 없었다. 자기 생각을 지키면서도 다른 마음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야 했다. 어머니의 걱정도, 스승의 아픈 조언도 시간이 지나서야 깊이 이해했다.

한때 소년은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영화였고, 영화를 함께 만들고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시작한 길에서,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듣는 법도 배웠다. 양윤호에게 영화는 그렇게 혼자 품은 꿈에서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됐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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