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빈의 첫 촬영에는 겨울과 여름이 함께 있었다.
당시에는 몸을 혹사하는 것까지 노력이라고 여겼다. 연예인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던 날을 돌아보면 지금도 그 추위가 먼저 떠오른다.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전, 몸으로 익힌 첫 기억이다.
그보다 앞선 날들은 여주에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식당과 커피숍, 주유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율동을 가르치기도 했다. 처음부터 연예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던 평범한 날들이 먼저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얼굴이 먼저 알려졌다. 얼짱 카페가 인기를 끌던 때였다. 사진을 보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연예계의 제안도 찾아왔다.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다른 사람이 먼저 발견했다. 그렇게 새로운 일을 시작할 기회가 열렸다.
연예계로 향한 과정에는 멈춰 선 때도 있었다. 가수 데뷔를 준비하며 연습했지만 회사가 문을 닫았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보낸 시간이 데뷔로 이어지지 못했다. 연습을 더 한다고 회사의 사정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2004년 온라인게임 통스통스 모델로 데뷔한 뒤 방송으로 활동을 넓혔다. 사진으로 먼저 알려진 얼굴에 말투와 표정이 더해졌다. 사람들은 여러 프로그램에서 강예빈을 만났다. 말하고 웃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친숙해졌다.
2012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UFC 옥타곤걸에 발탁되며 이름을 알렸다.
영화 투혼과 가문의 영광4,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와 왕가네 식구들에서도 관객과 시청자를 만났다.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허영달을 연기했다. 대중이 강예빈을 처음 본 자리는 저마다 달랐다. 방송에서 익숙해진 얼굴을 작품 속 인물로 다시 만나기도 했다.
작품을 마친 뒤 다음 일을 기다리는 시간도 있었다. 왕가네 식구들 이후 공백을 보낸 때에는 자신이 출연했던 방송을 다시 봤다. 감을 잃지 않았을지 걱정됐다. 새 소속사를 찾으면서 연기와 예능으로 다시 활동할 준비를 했다.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처음 배우는 일은 있었다. 2018년에는 연극 보잉보잉에 도전했다.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있었지만, 관객 앞에 직접 서는 무대는 낯설었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자신이 설 수 있을지 망설였다.
연습을 시작한 뒤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객석 뒤까지 목소리를 보내는 일이 어려웠다. 방송에서 쓰던 목소리와 무대에 필요한 발성이 달랐다. 호흡을 익히고 목소리에 힘을 붙였다. 공연을 이어가면서 조금씩 관객이 보이고 상대의 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공연 초반에는 긴장한 나머지 대사를 서둘러 마치고 들어가기 바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실수에도 여유가 생겼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떨림은 남아 있었지만, 관객과 호흡하는 즐거움도 알게 됐다. 연기를 익히는 과정이 매일의 공연 안에 있었다.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을 갖고도 다시 배워야 했다. 한 번 알려졌다는 사실이 다음 일을 대신해주지는 않았다. 강예빈의 활동에는 이렇게 낯선 자리에 들어가 자신의 몫을 익히던 날들이 있다.
지금도 연기 학원에 다니며 작품을 만날 준비를 한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거쳐왔어도 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익숙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 동안에도,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가족 안에서는 장녀였다. 경찰관인 아버지는 처음 방송 일을 반대했지만, 훗날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강예빈도 부모님의 행복한 노후를 생각하며 일했다. 자신의 활동을 가족의 앞날과 함께 생각하던 책임감이 있었다.
많은 도움을 받는 생활에 익숙해진 뒤 스스로를 돌아본 때도 있었다. 매니저가 여러 일을 맡아주던 일상이었다. 마음 깊이 새긴 것은 모든 것이 주어져도 자신이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사실이었다. 자기 삶을 바꾸려면 직접 움직여야 했다.
오래전 혼자 상상했던 미래에는 부모님 같은 가정이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과 평온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웃음 많은 일상을 바랐다. 2015년에도, 2017년에도 이어졌던 그 소망은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우리는 강예빈을 방송과 무대에서 먼저 만났다. 혼자 그려온 미래에는 함께 웃으며 사는 집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을 조금 더 알아가는 동안, 그런 바람도 만나게 된다.
다시 2월의 촬영장이다. 그 무렵 반전드라마 현장에서 만난 유재석은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강예빈을 알아봤다. 당시 쓰던 이름을 부르며 존댓말로 말을 건넸다. 강예빈에게는 자신을 알아봐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유재석은 하복 차림으로 추위에 떨던 강예빈에게 차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덮을 수 있도록 자신의 트렌치코트를 벗어줬다. 연기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에 받은 배려였다.
강예빈은 그날의 추위를 기억한다. 그리고 누군가 벗어준 코트 한 벌도 기억한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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