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저명한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민주당 대선 경선에 두 차례 출마했던 제시 잭슨 목사가 17일(현지시간) 84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그의 딸 산티타 잭슨은 아버지가 희귀 신경퇴행성 질환인 ’진행성 핵상 마비(PSP)’를 앓던 중 시카고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잭슨 목사는 앞서 2017년 파킨슨병 투병 사실을 공개한 바 있으나, 이후 더욱 심각한 신경퇴행성 질환인 진행성 핵상 마비 진단이 확인돼 치료를 받아왔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1941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태어난 잭슨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을 겪었다. 고등학교 시절 쿼터백으로 활약하며 일리노이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나, ‘흑인은 쿼터백을 맡을 수 없다’는 차별적 대우를 받고 노스캐롤라이나 A&T 주립대로 편입했다. 1960년에는 백인 전용 공공 도서관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다 체포된 ‘그린빌 8인’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그는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민권 운동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1968년 4월 멤피스 로레인 모텔에서 킹 목사가 암살당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잭슨 목사는 훗날 “우리는 피에 젖은 채 누워 있는 39세의 그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킹 목사 암살 이후 잭슨 목사는 시카고를 근거지로 1971년 ’오퍼레이션 푸시(Operation PUSH)’를, 1984년에는 ’전미 레인보우 연합(National Rainbow Coalition)’을 설립했다. 두 단체는 훗날 ’레인보우 푸시 연합(Rainbow PUSH Coalition)’으로 통합됐다. 그는 집회 현장마다 “나는 가난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다(I am Somebody)“라는 외침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었다.
잭슨 목사는 흑인 최초로 전국 단위 대통령 선거운동을 벌이며 미국 정치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해 흑인 정치인의 가능성을 새롭게 정의했다. 특히 1988년 경선에서는 29%를 득표하며 11개 주 프라이머리와 2개 주 코커스에서 승리, 최종 후보가 된 마이클 두카키스를 강력히 압박했다.
잭슨 목사는 공식 직함 없이도 해외 인질 석방 협상에 뛰어들었다. 1984년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의장을 만나 쿠바인 및 미국인 수감자들의 석방을 이끌어냈고, 1990년에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설득해 쿠웨이트 침공 이후 억류된 700여 명의 외국인 여성과 아이들을 구출했다. 공화당 소속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자비의 임무(mission of mercy)’라 평가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러한 공로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잭슨 목사를 아프리카 민주주의 증진 특사로 임명하고 미국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1986년 방한 당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고, 가택연금 상태였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넬슨 만델라’로 부르며 민주화를 지지했다. 2018년 두 번째 방한에서도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전하며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종전의 날, 평화의 날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잭슨 목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미국 대통령들이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진정한 거인의 별세 소식에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잭슨 목사는 두 차례 역사적 대선 경선에 출마해 내가 이 나라 최고위 직책에 도전하는 캠페인의 토대를 깔았다. 60년 이상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운동을 이끌었으며, 우리는 그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회고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수십 년에 걸친 우정 속에서 나는 잭슨 목사를 역사가 그를 기억하는 대로 알고 있다. 신의 사람이자 국민의 사람, 단호하고 끈질기며 우리나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었다”고 추모했다.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법대생 시절 자신의 차에 ‘제시 잭슨을 대통령으로’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는 일화를 전하며 “그는 나와 많은 이들에게 이타적 지도자이자 멘토, 친구였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는 공동 성명을 통해 “잭슨 목사는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고 더 나은 미국을 위한 일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고 애도했다.
잭슨 목사는 1984년 경선 당시 뉴욕을 유대인 비하 표현인 ’하이미타운(Hymietown)’으로 칭하는 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나는 완벽한 종은 아니지만, 역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공복”이라며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했다.
말년에도 사회 정의 활동을 이어간 잭슨 목사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당시 경찰의 가혹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희망을 살려라(Keep hope alive)“를 외쳤고,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도 참석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 종식 결의를 지지했다.
서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