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범들 사이에 영업비밀을 주고받은 행위도 별개의 독립 범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영업비밀의 ‘사용’이 인정되더라도 이에 앞선 ‘취득’과 ‘누설’ 행위를 별도 범죄로 보지 않으면 더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자를 오히려 가볍게 처벌하는 불균형이 생긴다는 취지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및 부정경쟁방지법(영업비밀 국외 누설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전직 부장 김모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공범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반도체 장비 제조사 유진테크 전 직원 방모씨(징역 2년6개월)와 또 다른 협력업체 직원 김모씨(징역 1년6개월)도 파기환송심의 판단을 다시 받게 됐다.
이직에 동참한 방씨 등도 회사를 떠나기 전 유진테크의 반도체 증착장비 설계·제작·조립 도면 등 핵심 기술자료를 외부로 유출했다. 이 자료들은 이후 국내에 구축된 네트워크 연결저장장치(NAS) 서버에 업로드돼 중국 현지 ALD 장비 개발에 활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파악한 유출 기술자료의 개발비용 총합은 736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중국 현지에서 실명 대신 영문 가명을 사용하거나 위장 회사와 고용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은밀히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은 이들이 NAS 서버에 영업비밀을 업로드해 해외에서 사용한 행위에 대해 영업비밀 ‘사용’에 따른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공범들 사이에 영업비밀을 주고받은 ‘누설·취득’ 행위는 “공범자들이 영업비밀을 사용하기 위해 이를 전달하거나 전달받은 수단에 불과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사용죄가 성립하는 이상 그 전 단계인 누설·취득은 독립된 법익 침해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2심도 이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2심에서 1심보다 감형된 징역 6년에 벌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누설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 판단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을 취득, 사용, 제3자에게 누설, 지정된 장소 밖으로 무단으로 유출하는 행위를 각각 독립한 범죄로 규정하고, 이러한 행위가 개입된 사실을 알면서도 영업비밀을 사용하는 행위 또한 독립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처벌의 불균형 문제도 명확히 지적했다. 영업비밀을 주고받은 뒤 실제 사용까지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 경우, 누설·취득죄가 별도로 성립하지 않는다면 사용 미수죄만 적용돼 오히려 형이 감경될 수 있다. 반면 영업비밀을 단순히 주고받기만 한 경우에는 누설·취득 기수죄(완성된 범죄)가 그대로 성립해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다. 재판부는 “더 적극적으로 범행에 나선 자를 오히려 가볍게 처벌할 수 있는 불균형이 발생한다”며 원심을 파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영업비밀의 사용만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누설·취득이 선행돼 사용되는 경우 법익 침해의 정도와 불법성이 더 크다고도 강조했다.
대법원은 부정경쟁방지법의 입법 취지를 판결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해당 법의 입법 취지는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처벌 대상을 확대하면서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를 강화하는 데 있는 만큼, 제18조 위반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이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원심이 이 점을 간과했다고 꼬집었다.
또한 NAS 서버에 영업비밀을 업로드한 행위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 동시에 성립하는 ‘상상적 경합’ 관계임을 들어,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무죄 부분도 함께 파기했다. 한편 전직 삼성전자 부장 김씨가 상고하며 제기한 법리 오해 등 주장들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