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폭 한가운데,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서 대금을 비껴 물고 있다. 꽃무늬를 수놓은 모자를 쓰고, 금빛 점이 촘촘히 박힌 검은 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었다. 허리춤에는 푸른 대나무 한 토막이 비스듬히 끼워져 있다. 등에는 붉은 보자기로 싼 상자를 둘러멨고, 어깨 위로 뻗은 장대 끝에는 위는 주황, 아래는 남색인 청사초롱이 매달려 흔들린다. 혼례를 하루 앞두고 신부 집으로 예물 상자인 함을 지고 가던 '함진아비' 행렬, 그 맨 앞에서 피리를 불던 소년의 모습이다. 그런데 치맛자락 대신 드러난 발끝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통 복색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검은 하이힐이 또렷하다. 피리 부는 소년은 다름 아닌 필자 자신이다.
제목은 〈결혼: 함 들어 오는 날〉이다. 필자는 사라져 가는 이 풍경이 아쉬워 붓을 들었다. 예전에는 등불을 밝히고 오징어 가면을 쓴 채 박을 깨며 떠들썩하게 새 식구를 맞았는데, 요즘에는 그 의식 대신 함을 명품 여행 가방에 담아 건네는 식으로 간소해졌다고 적었다. 편리해지는 만큼 함께 옅어지는 정서가 있는 것 같아,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깨진 박과 오징어 가면, 청사초롱과 피리 소리를 화폭 안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는 것이다. 없어지고 난 뒤에야 그 장면이 얼마나 다정했는지 깨닫게 되는 일이 더러 있다.
가을은 예부터 혼례가 몰리는 철이다. 선선한 날씨에 야외 예식을 올리기 좋아, 지금도 9월부터 11월까지는 결혼 성수기로 꼽힌다. 스페셜타임스는 올해 9월 30일 가을 결혼 시즌을 맞아 예식 풍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전했다. 결혼 자체는 돌아오는 중이다. 국가데이터처 발표를 인용한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4만 건으로 한 해 전보다 8.1% 늘어, 2018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았고 3년 연속 증가했다. 올해 1월 혼인도 2만 2640건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12.4% 늘었다. 30대 초반 인구가 늘고, 전염병으로 미뤄 두었던 혼례가 뒤늦게 겹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결혼을 미루던 사람들이 다시 식장으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결혼을 둘러싼 풍경은 오히려 조용해지고 있다. 앞의 스페셜타임스 보도를 보면, 하객 500명이 넘던 대형 예식장 대신 50명에서 100명 남짓한 작은 공간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부모의 지인까지 부르던 관행에서 벗어나 정말 초대하고 싶은 사람만 부르고, 봉투에 담아 건네던 축의금도 모바일 청첩장에 적힌 계좌로 미리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비용 부담도 한몫 한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올봄 전국 평균 결혼 비용은 2141만 원, 그중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을 묶은 이른바 '스드메'만 319만 원이었다. 뉴시스는 지난 3월 부담을 줄이려 중고 거래와 해외 직구로 직접 준비하는 '셀프 웨딩'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함을 전하는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함진아비 여럿이 신부 집 앞에서 '함 사세요'를 외치며 함값을 두고 밀고 당기던 흥정은, 이제 신랑이 혼자 조용히 함을 건네는 쪽으로 바뀌어 그 떠들썩한 광경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사실 이런 변화에는 그럴 만한 까닭도 있다. 예물과 함값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함이 오히려 혼사의 부담이 되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던 터다. 간소함을 택하는 마음을 탓하기 어려운 이유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라지는 전통을 되살리려는 시도도 있다. 서울신문 보도를 보면 2024년 서울 관악구에서는 교배례와 폐백 같은 절차를 알맞게 간추린 전통 혼례로 마흔여섯 쌍이 식을 올렸다.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동양화과 학사와 동양화과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현정 작가는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전시 작품 완판, 6만 7402명의 국내 개인전 최다 관람객 기록 등으로 주목받았다. 김현정 화가의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MBC 연기대상에서는 연말 방송 시상식 최초로 한국화를 무대 배경으로 선보이며 메인 작품과 로고, 포스터, 티켓, 브릿지 영상을 맡았다. MBC 일일드라마 〈가족관계증명서〉에서 동양화가인 주인공 '지니'의 그림 역시 김현정의 〈내숭〉 연작이다. 프랑스 카스텔 그룹의 스파클링 와인 뵈브 드 베르네(Veuve du Vernay) 코리아 에디션에는 서울의 풍경을 그려 넣는 등 방송과 브랜드를 넘나드는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에세이 《김현정의 내숭》, 컬러링북 《내숭이야기 컬러링북》, 《한국화를 배우는 시간: 개념편》, 《한국화를 그리는 시간: 실기편》 등이 있다. 또한 김현정 작가는 미술강연과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로서 전통 회화와 동시대 시각문화를 연결하고 있으며,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교육·집필·칼럼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글_김현정









